작성일
2021.07.13
수정일
2021.07.13
작성자
한반도평화연구소
조회수
746

우숭민, "다함께 통일 공부 5편: 주체사상의 등장"

 


다 함께 통일 공부 제5편과 제6편에서는 주체사상에 대해 알아본다. 제5편은 주체사상의 등장배경과 주체사상이 북한의 핵심 이데올로기로 발전하는 역사를 살펴볼 것이다. 제6편에서는 주체사상이 무엇인지 심층적으로 다룰 예정이다.

 

북한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 중 하나는 바로 주체사상이다. 주체사상은 북한의 주요 정치사상으로 비단 정치뿐만 아니라 경제, 외교 등 사회 전반에 걸친 북한의 통치 기반이다. 주체사상은 김일성이 자신의 일인 독재를 더욱 공고히 하고 1960년대 이후 소련과 중국의 이념 분쟁 속 독자 노선을 공고히 하기 위해 탄생하였다. 1950년대까지 북한의 공식 이데올로기는 맑스-레닌주의었다. 북한은 한국전쟁 이후 지속적으로 주권국가로서의 자주성을 강조하였으나 소련과 중국에 지원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기에 제약사항이 많았다.

 

주체사상은 1960년대 중·소 분쟁 속 김일성의 권력 보호 의지와 북한 자국의 독자적 노선 형성을 위해 만들어지기 시작했다. 당시 김일성은 북한 정치의 계파였던 연안파와 소련파를 종파분자로 몰며 자신이 권력을 독점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서는 중국과 소련의 영향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었고, 동시에 자신만의 권력 정당성의 확보가 필요했다. 또한 북한은 1956년 사회주의 건설과 혁명을 추동하는 '천리마 운동' 등이 개시되고 '경제에서의 자립'에 대한 의지가 강해졌다. 이는 김일성이 자립적 민족경제 건설을 위해 인민을 동원할 필요가 있었고 초기의 주체사상은 일종의 인민 동원의 방법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주체'라는 말을 김일성이 처음으로 공식석상에서 사용한 것은 1955년 12월 28일 로동당 선전선동에서이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 사망 이후 흐루시쵸프가 집권하고 있었고 사회주의에로의 다양한 길을 인정하였다. 즉, 독자노선의 길이 열리고 소련의 간섭이 약화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대내적으로는 56년 종파사건 등 북한 로동당 내 각 정파가 김일성의 권력과 정책노선에 도전하고 있었다. 김일성은 소련파 등을 견제하고 자신의 당내 리더십을 강화하며 자신의 입장을 정당화· 합리화할 무기로 주체를 활용하였다.

 

당시 '주체'를 통해 김일성이 내세운 것은 사대주의와 형식주의를 벗어나 맑스-레닌주의를 조선혁명을 위해 실정에 맡게 적용하자는 것이었다. 1956년 12월 11일 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는 '주체'의 정치·경제·군사 노선을 표방하며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라는 주체의 3원칙을 세워나갔다. 이후 김일성은 일인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과정에서 주체를 끊임없이 활용하였다. 1965년 4월 김일성은 "주체를 세운다는 것은 혁명과 건설의 모든 문제를 독자적으로, 자기 나라의 실정에 맞게 그리고 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가는 원칙을 견지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하며 주체의 핵심인 독자노선을 공고히 하고자 하였다.

 

'주체'가 '주체사상'이라는 용어로 처음 사용된 것은 1967년 12월 최고인민회의 제4기 1차회의에서다. 김일성은 "우리 당의 주체사상은 우리의 혁명과 건설을 수행하기 위한 가장 확고한 맑스-레닌주의 지도사상이며, 공화국 정부의 모든 정책과 활동의 확고부동한 지침"이라고 하며 '주체사상'을 공식적으로 언급하였다. 1967년은 갑산파를 포함한 모든 당내 계파들이 제거되고 '수령'이라는 말을 사용하며 김일성 유일주의가 확립되어간 시기이다. 1967년 이후 유일주의의 기틀을 완성한 김일성은 '사상에서의 주체, 정치에서의 자주, 경제에서의 자립, 국방에서의 자위'의 정신을 구현하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의 '주체사상'을 구체화시켰다.

 

이후 1970년 11월, 로동당 제5차 대회에서 맑스-레닌주의와 함께 주체사상을 당의 공식 이데올로기로 채택하였다. 1980년 10월 로동당 제6차 대회에서는 당규약을 개정하여 "조선로동당은 오직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의 주체사상, 혁명사상에 의하여 지도된다"고 명문화 하면서 맑스-레닌주의를 삭제하고 주체사상을 최고의 유일 지도 이념(순수이데올로기)로 규정하였다. 북한 헌법에서는 맑스-레닌주의가 1992년까지 유지되다 1992년 4월 제7차 헌법 개정을 통해 삭제되었다. 주체사상은 1982년 김일성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김정일의 <주체사상에 대하여>라는 논문을통해 완전히 체계화되었다. 이후 김일성 사후 김정일 집권 초, 유훈통치와 함께 주체사상을 '김일성주의'로 격상시켰다.

 

주체사상은 철학적 기반에 바탕을 둔 정치사상이라기 보다는 북한이 처해 있는 현실 속 필요에 의해 점차적으로 그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주체사상의 본질은 결국 김일성 1인 지배체제(수령영도체제)의 강화와 정당화에 있으며 인민의 '주체'가 아닌 '수령의 주체'로 기능하였다. 또한 경제건설과 국방력 강화의 병진정책을 위한 사회동원체제를 뒷받침 해주었으며 중·소 분쟁 속 중립노선과 실리추구외교에 대한 이론적 근거로 작용하였다. 이후 북한은 김정일 시대와 김정은 시대를 거쳐 주체사상을 필두로 선군사상, 김일성-김정일주의 등을 내세우며 3대 세습권력을 정당화해 가고 있다.

 

※참고자료

김창희. (2016.02.15). 김정은 정치의 프레임. 법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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